경남도민신문 2013. 5. 17 칼럼--무엇이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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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채 댓글 0건 조회 1,310회 작성일 13-05-16 13:03본문
http://www.gn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8794
무엇이 다를까요 / 이채
"땅 위에서 부산하게 기어다니는 개미의 일과를 본 적이 있는가
자신의 몸보다 큰 먹이를 입에 가득 물고 한 걸음도 안되는 거리를 종일 기어가는 개미의 힘겨움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모습 애처로워 빈 나뭇가지로 그들의 집으로 보이는 그곳까지 개미를 옮겨다 주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집 앞에 도착한 개미는 그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치 처음 와 본 곳인 양, 길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힘에 의해 자신의 익숙한 길에서 이탈한 개미는 어쩔줄을 몰라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로또에 당첨된 어느 부부의 파경과 하루 아침에 졸부가 된 그 어떤 사람의 정도를 벗어난 삶의 모습
그리고 하나둘씩 졸부의 주변을 떠나는 그와 친밀했던 사람과 사람들, 자신의 노동 없이 도착한 집 앞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개미와 노력 없이 얻은 부귀영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무엇이 다를까요"
위의 글은 약 10년 전, 필자가 직접 개미들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경험한 일을 글로 적은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또한 노력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고는 하지만 살다보면 반드시 그렇치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수 억, 수 십억에 달하는 복권에 당첨이 된다든가, 오래전에 사둔 부동산이 몇 배, 몇 십배로 뛰어 일약 부동산 재벌이 된다든가, 매수한 주식이 어떠한 일련의 호재로 급등하여 짧은 기간동안 많은 이익을 낸다든가 등, 아주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주변에는 가끔 이런 사람들의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부의 축적이 자신의 노력과 관계없이 이루어진, 아니면 자신의 노력보다 훨씬 많은 부의 축적을 이루었을 때, 과연 자신의 삶을 절제할 수 있는가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 분수를 모르고 오만해지는 경우도 있을 게다. 오늘날 우리는 노동의 의미와 노동의 댓가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보다 노동의 댓가에 따라 능력의 차이를 인정받고자 하는 사고가 팽배한 듯하다.
그러하니 물질은 육체를 위하여 존재할 뿐 아니라 그 영혼까지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개개인의 사고와 사회적 현상이 안타까운 이유는 진실로 노동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일한다는 것은 그저 생계의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대광실이 좋다 해도 무릎 펴기는 내 집만 못하더라
행복을 일컬음에 반드시 높고 큰 것은 아니로되
뜻이 있고 선량한 마음이 살면 그것이 곧 행복이 아니더냐
사람이 한평생 살아감에 기쁨은 무엇이며 슬픔은 또 얼마이던가
생각을 달리하면 모진 비바람도 은혜롭기만 하네
크든 작든 내 몫이면 족할 것이요
잘났던 못났던 나 됨이 마냥 행복하여라
-"나 됨이 행복하여라" 이채의 시-
무엇이 다를까요 / 이채
"땅 위에서 부산하게 기어다니는 개미의 일과를 본 적이 있는가
자신의 몸보다 큰 먹이를 입에 가득 물고 한 걸음도 안되는 거리를 종일 기어가는 개미의 힘겨움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모습 애처로워 빈 나뭇가지로 그들의 집으로 보이는 그곳까지 개미를 옮겨다 주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집 앞에 도착한 개미는 그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치 처음 와 본 곳인 양, 길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힘에 의해 자신의 익숙한 길에서 이탈한 개미는 어쩔줄을 몰라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로또에 당첨된 어느 부부의 파경과 하루 아침에 졸부가 된 그 어떤 사람의 정도를 벗어난 삶의 모습
그리고 하나둘씩 졸부의 주변을 떠나는 그와 친밀했던 사람과 사람들, 자신의 노동 없이 도착한 집 앞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개미와 노력 없이 얻은 부귀영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무엇이 다를까요"
위의 글은 약 10년 전, 필자가 직접 개미들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경험한 일을 글로 적은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또한 노력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고는 하지만 살다보면 반드시 그렇치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수 억, 수 십억에 달하는 복권에 당첨이 된다든가, 오래전에 사둔 부동산이 몇 배, 몇 십배로 뛰어 일약 부동산 재벌이 된다든가, 매수한 주식이 어떠한 일련의 호재로 급등하여 짧은 기간동안 많은 이익을 낸다든가 등, 아주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주변에는 가끔 이런 사람들의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부의 축적이 자신의 노력과 관계없이 이루어진, 아니면 자신의 노력보다 훨씬 많은 부의 축적을 이루었을 때, 과연 자신의 삶을 절제할 수 있는가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 분수를 모르고 오만해지는 경우도 있을 게다. 오늘날 우리는 노동의 의미와 노동의 댓가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보다 노동의 댓가에 따라 능력의 차이를 인정받고자 하는 사고가 팽배한 듯하다.
그러하니 물질은 육체를 위하여 존재할 뿐 아니라 그 영혼까지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개개인의 사고와 사회적 현상이 안타까운 이유는 진실로 노동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일한다는 것은 그저 생계의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대광실이 좋다 해도 무릎 펴기는 내 집만 못하더라
행복을 일컬음에 반드시 높고 큰 것은 아니로되
뜻이 있고 선량한 마음이 살면 그것이 곧 행복이 아니더냐
사람이 한평생 살아감에 기쁨은 무엇이며 슬픔은 또 얼마이던가
생각을 달리하면 모진 비바람도 은혜롭기만 하네
크든 작든 내 몫이면 족할 것이요
잘났던 못났던 나 됨이 마냥 행복하여라
-"나 됨이 행복하여라" 이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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