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신문 2013. 6.14 칼럼--진실과 거짓, 그리고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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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채 댓글 0건 조회 1,247회 작성일 13-06-13 14:01본문
http://www.gn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0396
진실과 거짓, 그리고 양심 / 이채
"진실"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 없이 바르고 참되다"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진실하다"라는 말은 결코 거짓이 없어야만 가능한 것인가.
또한 "진실한 사람"이란 결코 거짓된 행동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참으로 판단하기 애매하고 난해하다.
우리는 살면서 본의든 아니든 거짓말을 하게되고 더러 거짓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일까.
진실과 거짓에 대하여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고 인정하건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진실이란 거짓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고백하고 뉘우칠 줄 아는 양심이며 그 양심 또한 진실인 것이다.
거짓을 저지르고도 반성이 없이 똑같은 거짓을 또 저지른다면 이것은 분명 거짓이겠으나
충분히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한 거짓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실하다고 보는 것이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하긴 그 거짓의 정도가 사회적, 개인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주며 그 파급효과와 정도가 핵심이 되겠지만 말이다.
반면, 거짓은 거짓을 포장을 하기 위한 거짓말이 필수요건이며 그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생산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먼저한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한 추가적인 거짓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은 기억력이 상당히 좋아야함은 당연하다.
결국 거짓말은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낳고 자신은 물론 사회전반에 걸쳐 불신을 초래하는 씨앗이 되는 셈이다.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의 판단이 쉽지 않고 오히려 거짓이 진실보다 더 진실해 보이는 경우도 있겠으나
진실은 생명력이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처음엔 마을사람들 모두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진실로 믿었지만 그 거짓말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양치기 소년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급기야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의 한계성을 드러내는 좋은 예라 할 것이다.
그러하니 진실과 거짓, 즉 선하고 참된 것은 보이지 않는 양심의 문제이지
입으로 하는 말이나 그럴듯하게 포장된 행동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거짓은 때로 진실을 이기고 법망을 피해가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내면의 유일한 재판관인 양심은 진실과 거짓의 여부를 명백히 알고 있다는 것이며,
그 양심은 사람은 물론, 신도 매수할 수 없는 유일한 보석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진실과 거짓이 싸우는 전쟁터와도 같다
거짓은 수많은 이유와 논증을 만들어 억지로 믿게 하려 하지만
진실은 그 자체가 사실일 뿐 진리를 위해
순교하는 이는 있어도 거짓을 위해 죽는 자는 없다.
- "진실과 거짓" 소리새/박종흔 시인의 시 -
진실과 거짓, 그리고 양심 / 이채
"진실"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 없이 바르고 참되다"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진실하다"라는 말은 결코 거짓이 없어야만 가능한 것인가.
또한 "진실한 사람"이란 결코 거짓된 행동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참으로 판단하기 애매하고 난해하다.
우리는 살면서 본의든 아니든 거짓말을 하게되고 더러 거짓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일까.
진실과 거짓에 대하여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고 인정하건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진실이란 거짓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고백하고 뉘우칠 줄 아는 양심이며 그 양심 또한 진실인 것이다.
거짓을 저지르고도 반성이 없이 똑같은 거짓을 또 저지른다면 이것은 분명 거짓이겠으나
충분히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한 거짓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실하다고 보는 것이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하긴 그 거짓의 정도가 사회적, 개인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주며 그 파급효과와 정도가 핵심이 되겠지만 말이다.
반면, 거짓은 거짓을 포장을 하기 위한 거짓말이 필수요건이며 그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생산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먼저한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한 추가적인 거짓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은 기억력이 상당히 좋아야함은 당연하다.
결국 거짓말은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낳고 자신은 물론 사회전반에 걸쳐 불신을 초래하는 씨앗이 되는 셈이다.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의 판단이 쉽지 않고 오히려 거짓이 진실보다 더 진실해 보이는 경우도 있겠으나
진실은 생명력이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처음엔 마을사람들 모두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진실로 믿었지만 그 거짓말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양치기 소년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급기야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의 한계성을 드러내는 좋은 예라 할 것이다.
그러하니 진실과 거짓, 즉 선하고 참된 것은 보이지 않는 양심의 문제이지
입으로 하는 말이나 그럴듯하게 포장된 행동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거짓은 때로 진실을 이기고 법망을 피해가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내면의 유일한 재판관인 양심은 진실과 거짓의 여부를 명백히 알고 있다는 것이며,
그 양심은 사람은 물론, 신도 매수할 수 없는 유일한 보석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진실과 거짓이 싸우는 전쟁터와도 같다
거짓은 수많은 이유와 논증을 만들어 억지로 믿게 하려 하지만
진실은 그 자체가 사실일 뿐 진리를 위해
순교하는 이는 있어도 거짓을 위해 죽는 자는 없다.
- "진실과 거짓" 소리새/박종흔 시인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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