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신문 2013.7.12. 칼럼--금지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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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채 댓글 0건 조회 1,115회 작성일 13-07-10 19:44본문
http://www.gn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2010
금지된 사랑 / 이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정은 누가 뭐래도 사랑일 것이다. 이 아름다운 사랑이 금지된 것이라면 이보다 슬픈 일이 또 있을까. 금지된 사랑은 만인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 애절하고 그 상처와 아픔 또한 상대적으로 더 클 수도 있을 것이다. 숱한 시선을 피하기 위해 때로는 태양을 등져야 하고 기쁨이나 눈물마저도 자신만의 블랙홀에 깊이 가둬야 하는 이른바 주소가 없는 집이며 호적이 없는 존재와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진실도 죄악이 될 수 있는 금지된 사랑은 법으로 보호받을 권리는 물론이려니와 관습이나 도덕에서도 구제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때로는 동정심마저 불러일으킨다. 금지된 사랑이 원초적, 동물적 본능이 아닌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소중한 가치의 순수함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규정해 놓은 잣대에 어긋나는 사랑을 법과 도덕은 단호히 거절한다.
도덕은 원래 그 성격상 인간의 동물적 본능에 그다지 관대하지 않으며 법과 규범의 상식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동과 행위,그리고 이성적 판단과 절제의 엄격만을 지향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법과 도덕에 비록 어긋난 금지된 사랑일지라도 누구도 그 순수함과 아름다움의 감정에 돌을 던질 권리는 없을 것이다. 어쩌란 말인가. 살다가 단 하나의 사랑만을 만난다면 몰라도 그렇치 않을 수도 있질 않은가. 사랑은 미적분이나 이차함수로 풀 수있는 수학적 개념이 아니요, 빗물과 눈물을 물+X 로 구분 짓는 화학적 개념도 아니다. 더욱이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중략)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란 황진이 시조 몇 줄을 읊는다 해서 서화담이 올 리도 만무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올지 모르는 사랑 앞에서 우리의 감정은 늘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을 뿐이다.
2차대전 후 온 세상의 젊은이들을 사로 잡았던 철학자이자 작가인 사르트르가 역시 학자요 작가인 보부아르와 계약 결혼을 했을 때 그들의 육체를 초월한 실험 결혼이 성공하길 많은 사람들은 기대했었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7년간이나 사르트르 몰래 금지된 사랑을 했으며 사르트르도 5년간이나 보부아르에게 질투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금지된 사랑놀음은 둘 다 피장파장인 셈이다.
몰래 한 사랑이 들통이 나자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에게 "너와의 사랑은 필연이지만, 우연의 사랑도 놓칠 수는 없다" 라며 사랑의 누수화 현상을 자못 철학적인 궤변으로 늘어놓았다.
필연의 사랑과 우연의 금지된 사랑을 다 필요로 했던 사르트르에게 서슴치 않고 동의의 한 표를 던지기엔 아직이 사회의 정서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보수적인 자세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나 또한 금지된 사랑의 그 순수한 감정만은 지극히 존중하나 전적으로 찬양할 수만은 없는 보수적 그룹의 일원임을 고백한다.
-"금지된 사랑" 이채의 수필-
금지된 사랑 / 이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정은 누가 뭐래도 사랑일 것이다. 이 아름다운 사랑이 금지된 것이라면 이보다 슬픈 일이 또 있을까. 금지된 사랑은 만인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 애절하고 그 상처와 아픔 또한 상대적으로 더 클 수도 있을 것이다. 숱한 시선을 피하기 위해 때로는 태양을 등져야 하고 기쁨이나 눈물마저도 자신만의 블랙홀에 깊이 가둬야 하는 이른바 주소가 없는 집이며 호적이 없는 존재와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진실도 죄악이 될 수 있는 금지된 사랑은 법으로 보호받을 권리는 물론이려니와 관습이나 도덕에서도 구제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때로는 동정심마저 불러일으킨다. 금지된 사랑이 원초적, 동물적 본능이 아닌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소중한 가치의 순수함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규정해 놓은 잣대에 어긋나는 사랑을 법과 도덕은 단호히 거절한다.
도덕은 원래 그 성격상 인간의 동물적 본능에 그다지 관대하지 않으며 법과 규범의 상식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동과 행위,그리고 이성적 판단과 절제의 엄격만을 지향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법과 도덕에 비록 어긋난 금지된 사랑일지라도 누구도 그 순수함과 아름다움의 감정에 돌을 던질 권리는 없을 것이다. 어쩌란 말인가. 살다가 단 하나의 사랑만을 만난다면 몰라도 그렇치 않을 수도 있질 않은가. 사랑은 미적분이나 이차함수로 풀 수있는 수학적 개념이 아니요, 빗물과 눈물을 물+X 로 구분 짓는 화학적 개념도 아니다. 더욱이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중략)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란 황진이 시조 몇 줄을 읊는다 해서 서화담이 올 리도 만무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올지 모르는 사랑 앞에서 우리의 감정은 늘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을 뿐이다.
2차대전 후 온 세상의 젊은이들을 사로 잡았던 철학자이자 작가인 사르트르가 역시 학자요 작가인 보부아르와 계약 결혼을 했을 때 그들의 육체를 초월한 실험 결혼이 성공하길 많은 사람들은 기대했었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7년간이나 사르트르 몰래 금지된 사랑을 했으며 사르트르도 5년간이나 보부아르에게 질투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금지된 사랑놀음은 둘 다 피장파장인 셈이다.
몰래 한 사랑이 들통이 나자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에게 "너와의 사랑은 필연이지만, 우연의 사랑도 놓칠 수는 없다" 라며 사랑의 누수화 현상을 자못 철학적인 궤변으로 늘어놓았다.
필연의 사랑과 우연의 금지된 사랑을 다 필요로 했던 사르트르에게 서슴치 않고 동의의 한 표를 던지기엔 아직이 사회의 정서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보수적인 자세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나 또한 금지된 사랑의 그 순수한 감정만은 지극히 존중하나 전적으로 찬양할 수만은 없는 보수적 그룹의 일원임을 고백한다.
-"금지된 사랑" 이채의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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