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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채 댓글 0건 조회 1,920회 작성일 06-03-27 23:49본문
<사람들> 첫 시집 낸 패션디자이너 이채씨
첫 시집 낸 패션디자이너 출신 이채 씨/ 이채 제공
"쓰다만 천조각으로 예쁜 옷 짓듯 시를 써요"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제 별명이 '맥가이버 손'입니다. 다 떨어진 옷
이나 쓰다만 천조각을 갖다 줘도 뭔가 그럴듯하게 재생해내니까 주변에서 붙여준 별
명이죠."
첫 시집 '그리워서 못살겠어요 나는'(도서출판 천우)을 출간한 이채(본명 정덕
희) 씨의 직업은 패션디자이너. 한국패션협회 회원인 그는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
한 뒤 서울에서 패션숍을 운영하다 지금은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불황때문에 패션숍을 정리했습니다. 처음에 냈던 숍의 반응이 좋아 체인점을
내려니까 식구들이 막더군요. 끝장을 보려는 성격으로 인해 자칫 제 삶이 다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죠. 패션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리려면 막대한 투자비가 듭니다.
더군다나 패션분야가 점점 대형화되고 기업화되는 실정이어서 개인의 라벨을 걸고나
서기엔 위험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영재교육을 받고 과학고를 거쳐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조기 입학한 아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한동안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 수 없었던 상황도 그가 패션디
자이너 활동을 중단한 이유의 하나다.
"가정에서 뒷바라지 역할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했다고 자부해요. 그래서 앞
으로의 시간은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해야겠다 마음먹었죠. 그래서 글쓰기에 도전했습
니다."
1998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그는 지난해 같은 잡지를 통해 시인
으로 등단한 뒤 6개월여만에 첫 시집을 냈다.
"비 내리는 밤에/내리는 건 비만이 아니더라//달도 별도 다 내린다는 걸/캄캄한
채로 비워진/헛된 그리움을 본 후에야 알았다"('비 내리는 밤에' 중)라거나 "큰 슬
픔은 눈물 밖에 있다/울어도 눈물을 봉인하고/물기 없는 슬픔에/마지막 울음까지 목
이 메일 때가 있다"('그대 떠난 뒤의 슬픔이' 중)처럼 수록시들은 '비와 함께 내리
는 달과 별' '눈물 밖에 있는 슬픔' 등 독특한 이미지를 통해 일상의 삶과 사물의
이면에 감춰진 사랑, 슬픔, 그리움의 정조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유명해지고 싶어 시를 쓴다"고 말했다. 패션디자이너로는 이루지 못한 명
성을 작가로서 얻어내고 싶다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는 "패션분야에 비한다면 글
쓰기는 그야말로 소자본으로,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상당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의욕을 보였다.
그의 이런 발언은 현실적 성공의 잣대로 가늠하기 어려운 예술계의 생리와는 상
당한 거리감을 보인다.
"막상 문학동네에 와보니 시인들의 가난이 생각했던 것보다 깊더군요. 다른 분
야에서 일하다가 왔기 때문인지 제 눈에는 그런 문인들의 삶이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보여요. 움직이지도 않고 앉은 자리에서 '시인님'이라는 호칭에 만족하며 사는 것
같거든요. 그들에겐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자신의 시를 한구절쯤 욀 수 있는 작품을
쓰겠다는 꿈이나 의지가 없는 것 아닐까요?"
그의 이런 시각은 멀티미디어 시대에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는 문학의 현실을 어
쩌면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분야든 이런 정체된 분위기를 깰
수 있는 외부의 신선한 바람이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제 시에는 부엌 이야기도 없고, 김치 냄새도 안나고, 아이 엄마같지도 않고,
남편도 없어 보이고, 어머니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변에서 말합니다. 삶의 애환이
드러나지 않고 마치 구름방석에 앉아 별, 꽃이나 찾는 사치스러운 시를 쓴다는 거죠.
맞습니다. 그런데 제 속에서 이런 시가 줄줄 나옵니다. 삶에 찌든 사람이야말로 오
히려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것 아닙니까?"
그는 집안의 부엌에서 칼질을 하거나 무릎을 꿇고 방을 닦는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후다닥 해치우기 때문이다. 가족에게조차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는 성격 때문에 "맑은 물에 고기가 안산다"는 소리를 듣기 일
쑤이고, 실상과는 다르게 '사치스러운 시'를 쓴다는 평을 받는다고 그는 말했다.
"요즘 글에 불이 붙어 쓰기만 하면 시가 된다"는 그는 올해중 두 권의 시집을
더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운영중인 인터넷 홈페이지(ichae.org)와 인터넷 카페(htt
p://club.nate.com/aaopoloi)를 통해 3천여명의 팬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첫 시집은 출간한 지 한달여만에 2월 첫 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집
계에서 시부문 3위에 올라 있다.
http://blog.yonhapnews.co.kr/chuuki
ckchung@yna.co.kr
(끝)
첫 시집 낸 패션디자이너 출신 이채 씨/ 이채 제공
"쓰다만 천조각으로 예쁜 옷 짓듯 시를 써요"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제 별명이 '맥가이버 손'입니다. 다 떨어진 옷
이나 쓰다만 천조각을 갖다 줘도 뭔가 그럴듯하게 재생해내니까 주변에서 붙여준 별
명이죠."
첫 시집 '그리워서 못살겠어요 나는'(도서출판 천우)을 출간한 이채(본명 정덕
희) 씨의 직업은 패션디자이너. 한국패션협회 회원인 그는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
한 뒤 서울에서 패션숍을 운영하다 지금은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불황때문에 패션숍을 정리했습니다. 처음에 냈던 숍의 반응이 좋아 체인점을
내려니까 식구들이 막더군요. 끝장을 보려는 성격으로 인해 자칫 제 삶이 다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죠. 패션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리려면 막대한 투자비가 듭니다.
더군다나 패션분야가 점점 대형화되고 기업화되는 실정이어서 개인의 라벨을 걸고나
서기엔 위험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영재교육을 받고 과학고를 거쳐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조기 입학한 아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한동안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 수 없었던 상황도 그가 패션디
자이너 활동을 중단한 이유의 하나다.
"가정에서 뒷바라지 역할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했다고 자부해요. 그래서 앞
으로의 시간은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해야겠다 마음먹었죠. 그래서 글쓰기에 도전했습
니다."
1998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그는 지난해 같은 잡지를 통해 시인
으로 등단한 뒤 6개월여만에 첫 시집을 냈다.
"비 내리는 밤에/내리는 건 비만이 아니더라//달도 별도 다 내린다는 걸/캄캄한
채로 비워진/헛된 그리움을 본 후에야 알았다"('비 내리는 밤에' 중)라거나 "큰 슬
픔은 눈물 밖에 있다/울어도 눈물을 봉인하고/물기 없는 슬픔에/마지막 울음까지 목
이 메일 때가 있다"('그대 떠난 뒤의 슬픔이' 중)처럼 수록시들은 '비와 함께 내리
는 달과 별' '눈물 밖에 있는 슬픔' 등 독특한 이미지를 통해 일상의 삶과 사물의
이면에 감춰진 사랑, 슬픔, 그리움의 정조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유명해지고 싶어 시를 쓴다"고 말했다. 패션디자이너로는 이루지 못한 명
성을 작가로서 얻어내고 싶다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는 "패션분야에 비한다면 글
쓰기는 그야말로 소자본으로,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상당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의욕을 보였다.
그의 이런 발언은 현실적 성공의 잣대로 가늠하기 어려운 예술계의 생리와는 상
당한 거리감을 보인다.
"막상 문학동네에 와보니 시인들의 가난이 생각했던 것보다 깊더군요. 다른 분
야에서 일하다가 왔기 때문인지 제 눈에는 그런 문인들의 삶이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보여요. 움직이지도 않고 앉은 자리에서 '시인님'이라는 호칭에 만족하며 사는 것
같거든요. 그들에겐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자신의 시를 한구절쯤 욀 수 있는 작품을
쓰겠다는 꿈이나 의지가 없는 것 아닐까요?"
그의 이런 시각은 멀티미디어 시대에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는 문학의 현실을 어
쩌면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분야든 이런 정체된 분위기를 깰
수 있는 외부의 신선한 바람이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제 시에는 부엌 이야기도 없고, 김치 냄새도 안나고, 아이 엄마같지도 않고,
남편도 없어 보이고, 어머니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변에서 말합니다. 삶의 애환이
드러나지 않고 마치 구름방석에 앉아 별, 꽃이나 찾는 사치스러운 시를 쓴다는 거죠.
맞습니다. 그런데 제 속에서 이런 시가 줄줄 나옵니다. 삶에 찌든 사람이야말로 오
히려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것 아닙니까?"
그는 집안의 부엌에서 칼질을 하거나 무릎을 꿇고 방을 닦는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후다닥 해치우기 때문이다. 가족에게조차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는 성격 때문에 "맑은 물에 고기가 안산다"는 소리를 듣기 일
쑤이고, 실상과는 다르게 '사치스러운 시'를 쓴다는 평을 받는다고 그는 말했다.
"요즘 글에 불이 붙어 쓰기만 하면 시가 된다"는 그는 올해중 두 권의 시집을
더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운영중인 인터넷 홈페이지(ichae.org)와 인터넷 카페(htt
p://club.nate.com/aaopoloi)를 통해 3천여명의 팬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첫 시집은 출간한 지 한달여만에 2월 첫 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집
계에서 시부문 3위에 올라 있다.
http://blog.yonhapnews.co.kr/chuuki
ckchu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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